성폭력 피해 근로자의 직장 내 보호
박현동
qwer@qw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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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7
직장 안에서 일어난 성적인 괴롭힘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조사와 보호의 의무가 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받거나 알게 되면 사업주는 지체 없이 사실을 확인하는 조사를 해야 하고, 조사 기간 동안 피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 의무는 피해자가 형사 고소를 했는지와 무관하게 발생합니다.
보호 조치의 대표적인 내용은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휴가의 부여, 가해자와의 분리입니다. 피해자가 원하면 다른 부서나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고, 일정 기간 출근하지 않고 회복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조치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전보를 보호 조치라는 이름으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도 사업주의 의무입니다. 조사 결과 괴롭힘이 확인되면 징계, 근무 장소 변경 같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이때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가해자가 상급자라서 조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미루는 것은 의무 위반이 됩니다.
피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해고, 승진 제외, 부당한 업무 배치, 따돌림의 방치가 모두 불이익에 해당합니다. 신고 뒤 갑자기 평가가 나빠지거나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었다면 그 경위를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불이익 처우는 사업주에게 별도의 제재가 따르는 사안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과 진술 내용은 비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이 알게 된 내용을 다른 직원에게 누설하면 그 자체로 제재 대상이 됩니다. 실제로는 소문이 퍼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피해자는 조사 담당자에게 비밀 유지를 분명히 요청하고 누설이 의심되면 그 사실도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회사 내부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외부 기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노동 관서에 진정을 내면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의 조치 의무 이행 여부를 조사하고 시정을 지시합니다. 고용상 차별과 관련된 구제 절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절차는 형사 고소와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피해로 인해 정신적인 질환이 생겼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직장 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생겨 치료를 받게 되었다면, 그 치료비와 휴업 기간의 소득을 산재 보험으로 보상받는 길이 있습니다. 진료 기록과 사건 경위를 함께 제출해 업무와의 관련성을 소명해야 합니다.
형사 절차와 직장 내 절차의 관계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형사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이 회사에 자료를 요청하는 일이 생기고, 회사 조사에서 작성된 기록이 수사의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 조사에서 한 진술이 형사 절차의 진술과 어긋나면 신빙성 문제가 생기므로, 두 곳에서 같은 사실을 일관되게 말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거나,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형사 절차만 진행할 수 있고, 회사에 알릴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가해자가 같은 직장에 있다면 회사의 분리 조치 없이는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알릴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사건 뒤 계속 근무하기 어려워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에는 그 시점과 방식을 살펴야 합니다. 피해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이직 사유가 될 수 있고, 사업주의 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청구할 여지도 있습니다. 사직서에 개인 사정이라고만 적으면 이런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동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건을 목격했거나 피해자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동료는 조사에서 중요한 참고인이 됩니다.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동료가 불이익을 받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므로, 동료들이 안심하고 진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피해 직후부터의 기록이 모든 절차의 근거가 됩니다. 사건 일시와 장소, 그 뒤에 회사에 알린 날짜와 방법, 회사가 취한 조치와 그 시점, 신고 뒤 달라진 대우를 날짜별로 적어 두어야 합니다.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회사에 알리면 기록이 남아 나중에 확인하기 쉽습니다.
성폭력 피해 근로자가 직장 안에서 보호받을 권리는 피해자가 일을 잃지 않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터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일터를 떠나야 하는 일이 없도록 마련된 장치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회사 규모가 작아 분리할 부서가 없거나 가해자가 사업주 본인인 경우에는 내부 절차에 기대기 어렵습니다. 이때는 처음부터 노동 관서와 수사기관을 통한 절차를 함께 검토해야 하며, 출근 자체가 위험하다면 회복을 위한 휴직과 그 기간의 생계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이런 사업장에서 일어난 피해일수록 외부 기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삶과 피해자로서의 회복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 둘을 함께 지키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 선택이 조금은 수월해집니다.